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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불교초전지마을 체험체험 마을장터 모례장자와 아도화상 게시판

    선산군 옛지도

    ◎ 역사 속 문헌

    • - ‘삼국사기’ 권제4 신라 본기 제4 법흥왕조
    • - ‘삼국유사’ 권제3 흥법 제3 아도기라조
    • - ‘해동고승전’ 유통 아도조
    • - ‘해동고승전’ 고득상 시사
    • - ‘아도화상사적비문’
    • - ‘구룡사 사적 병 부도 이안 비명 서’
    •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선산도호부 불우조
    • - ‘일선지’ 권1 선산지도지 십절
    • - ‘교남지’ 선산군 사찰 도리사조
    사진

    아도는 '위'나라 아굴마(阿?磨)의 아들이며,
    묵호자(墨胡子)라고도 한다.
    신라 19대 눌지왕 때 19세의 나이로 어머니 고씨도령의 명에 따라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몰래 들어왔다.

    '아굴마의 아들, 묵호자(墨胡子)'

    묵호자 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에 와서 모례(毛禮)장자의 집에 굴을 파고 숨어서 살며

    낮에는 우곡(牛谷: 쇠골)에서 소 천마리와 양천골에서

    양 천마리를 기르는 목동이 되고 밤에는 많은 사람을 모아
    불법의 자비로운 진리를 강론하기를 3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 아도화상, 신라문화 창조의 밑거름

    그때 중국 양(梁)나라에서 사신으로 하여금 신라 왕실에 향(香)을 예물로 보내 왔으나 그 사용 방법을 몰라 걱정해 오던 중 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아도에게 물으니 “그것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神聖)하기가 이를 데 없고 소원을 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는 법이다. 신성이란 삼보에 지나는 것이 없다. 삼보란 불(佛), 법(法), 승(僧) 즉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그때 나라에서는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 여러 의원을 부러 약을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어 날이 갈수록 병은 더 심해졌다. 마지막으로 아도에게 치료를 청하여 아도가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린 얼마 아니하여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완쾌되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아도에게 큰 상을 내리고 흥륜사 등 일곱 개의 절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이 승하한 후 다시 불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여 아도는 ‘금수굴’이라는 굴에 들어가 숨었다. 이 굴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굴이었으나 아도가 들어간 후 불가에는 불공을 드리는 날이면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고 한다.

    절사진

    역사와 문가 있는 우리 마을! 이제 우리가 그 역사를 쓴다!

    비록 ‘아도’의 포교는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 공적은 크다. 신라로 하여금 외래문화에 눈을 뜨게 하였으며 한국 정신사의 큰 주류인 불교의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숭고한 정신에 교화를 입어 불도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한 이차돈이 거룩한 순교를 함으로 인해서(527년 23대 법흥황14년) 불교를 공인 받아 찬란한 신라문화를 창조하게 했으니 그 밑거름이 된 분이 곧 아도화상이었던 것이다.